투 뱅크 체제의 딜레마…하나-외환은행, 활력잃은 IT전략
외환은행 노조가 또 다시 반발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지주가 최근 주도하고 있는 외환은행 주식교환 논의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노조측은 1인 시위에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까지 찾아가 탄원서를 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통해 하나금융 1주를 외환은행 주식 5.28의 비율로 외환은행의 잔여지분 40%를 확보하기로 결의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잔여지분을 모두 확보할 경우 '5년간 독립경영 보장' 약속이 깨지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으로의 매각에 강력히 반대하다 하나금융측이 제시한 '5년간 독립경영 보장'이라는 카드를 받아들이면서 깃발을 내렸다. 마침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없이 따로 5년간 존재하는 투 뱅크(Two Bank) 체제가 만들어졌다.
물론 금융계 일각에선 '5년간 투 뱅크 체제'를 가져가는 것 자체가 사실은 무리라는 견해가 없지는 않다. 또 일부에선 '독립경영 기간은 5년에서 3년 정도로 단축시키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불과 1년만에 '대국민 약속'을 저버릴만큼 하나금융쪽에서 '합리적이고 절박한 이유'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5년'이란 시간은 양쪽에 동일하다. 그러나 한쪽은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위한 불편의 시간, 그래서 좀 더 단축시키고 싶은 시간'일 뿐이고, 반대쪽은 '주어진 5년내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하는 절박인 시간'으로 보인다.
'투 뱅크' 체제에서 갈등은 사실 예고된 것이다. 문제는 IT쪽에서도 이같은 '5년 투 뱅크' 체제의 후폭풍이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IT부문에선 한차례 후폭풍이 있었다.
지난해 7월18일, 하나금융 임원 워크숍에서 2014년 초까지 제도와 프로세스, 금리, 상품체계 등 IT 통합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하나금융측은 하나, 외환은행의 IT부문이 조기에 통합된다면 인건비를 제외하고 연간 1000억원의 직접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와함께 제도와 프로세스 등의 통합으로 매년 500억원 이상 비용절감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
결국 지난해 9월, 이같은 IT통합 논란은 우여곡절끝에 겨우 수면밑으로 가라앉았다.
◆투 뱅크 체제의 그늘, 대형 IT사업 사라져버린 두 은행 = 올해 하나은행의 총 IT예산은 1380억원 수준으로 이중 자본예산이 730억원, 경비예산 650억원인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 IT예산에서 IT장비와 시스템 개발에 소요되는 ‘자본예산’이 중요하다. 그러나 올해 주목할만한 것은 하나은행의 자본예산이 전년대비 45% 이상 대폭 감소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올해 자본예산 규모가 700억원대를 넘긴 것도 지난해에 투자를 집행못하고 이월된 예산 200억원을 합산한 것이다. 이미 수년전에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끝냈기때문에 대규모 IT사업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의 올해 IT예산중 자본예산은 1110억원 수준이다. 은행의 외형이나 점포수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단순 계산으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자본예산은 무려 400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더구나 국민은행측도 “비상경영이기 때문에 빠듯하게 짰다”고 푸념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나은행의 올해 IT투자 체감지수는 거의‘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본예산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하나은행이 편성한 자본예산중 서버, 스토리지(디스크 증설), ATM, PC교체(3000대 수준) 등 노후장비 교체 등 단순 하드웨어 도입이 50%를 훌쩍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상 고정비에 가까운 성격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눈여겨 볼만한 IT투자가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같은 무미건조한 IT투자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모두 투 뱅크 체제하에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의 IT자본예산이 전년대비 50%나 깍인 이유에 대해 금융IT 전문가들도 ‘투 뱅크’ 체제의 영향을 꼽는 분석이 많다.
예를들어 올해 개발기간 8개월~12개월 정도의 IT사업을 벌인다해도 향후 외환은행과의 합병후의 비즈니스 모델과 어느정도 부합할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새로 이사갈 집의 규격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가구를 미리 사는 것과 같은 위험이 있다. 중복투자이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투자가 될 수 있다.
물론 다른 시중 은행들도 시장 여건의 악화로 예년에 비해 올해 IT투자예산이 동결되거나 축소됐다.
하지만 스마트금융의 강화, ODS(아웃도어세일즈)및 비대면채널의 확대, BPR/PI를 통해 프로세스 고도화, 자산관리시스템 확충 등 빈곤속에서도 분명한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외환은행 역시 올해 IT예산이 다른 은행에 비해 빈곤하다. 물론 외환은행의 IT 예산이 적었던 것은 올해만의 현상은 아니다.
특히 과거 론스타가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외환은행의 자본예산 규모는 거의 600억~800억원대에서 고정되다시피 했다. 이 정도의 예산으론 외환은행 IT실무자들 스스로 표현했듯이 “숨만 쉴 정도”에 불과했었다. 노후 전산장비 교체, CPU 증설, ATM도입 등이 주요 항목이다.
물론 외환은행도 지난해 스마트 브랜치, G2G 등 의미있는 PI(프로세스혁신) 프로젝트를 한 것이 눈에 띠지만 이 역시 매머드급 사업으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2월17일 대타협 이후 하나와 외환, 두 은행 고객들에게 ATM 공동사용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하나SK, 외환카드가맹점 공동 사용 등 시너지 창출에 나섰다.
독립경영을 핵심으로 하는 '투 뱅크' 체제는 하나와 외환은행의 장점을 살리기위해 꺼내들었던 하나금융측의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않는 상황이라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IT전략 부문에선 5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물론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장점을 꺼내지 못하는 경영진의 능력 부재가 먼저 질책을 받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측은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했지만 1년도 안돼 IT부문에선 조기통합론이 나왔고, 또한 올해 두 은행 IT예산 편성에서 크게 의미를 둘만한 사업이 보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곱씹어봐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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