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이명박 정부 들어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한마디로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었고 책임과 역할에 대한 모호함으로 산업에 대한 진흥기능이 약화됐을 뿐 아니라 부처간 갈등이 확대됐다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중론이다.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고 부처 간 중복기능을 통합하고 축소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조직개편의 골자였다. 방통위 역시 방송을 비롯해 제조업 등과 정보통신산업의 융합을 통해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융합은 물론, ICT 산업의 진흥, 규제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종합편성채널 등장과정에서의 불공정한 정책과정을 비롯해, 통신요금에 대한 철학 부재, 와이브로·DMB 등 신산업에 대한 정책판단 오류 등 제대로 이뤄진 것은 없었다. 지상파 방송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방송사업자간 갈등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지난 5년에서 배워야=새로운 ICT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현재의 거버넌스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일단 분산된 정책기능이 그렇다.
행안부, 지경부, 문화부 등으로 ICT 관련 기능이 흩어졌다. 하지만 부처간 협력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고 부처 이기주의는 극복되지 않았다. 다시 흩어진 기능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예전에는 정통부하고만 얘기하면 됐지만 지금은 애매하게 걸친 영역 때문에 “누구하고 얘기해야 하나”라는 고민부터 하게 된 것이다.
규제 역시 중복되고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방통위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규제해소를 외쳤지만 여기저기서 가이드라인을 남발하면서 산업을 규제했다. 요금규제, 개인정보보호 관련 등의 규제들이 그렇다. 본인확인제 등 글로벌 표준과는 동떨어진 규제도 등장했다.
방통위 합의제의 비효율성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의사결정의 지연에 전문성 부족, 조정 및 중재능력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현 이계철 방통위원장이나 신용섭 위원의 경우 정통부 출신으로 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지만 최시중 전 위원장 등 다수의 위원들은 전문가라고 하기보다는 정치적 색채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 전 위원장의 경우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전문성 부족에 급변하는 트렌드에 대한 대응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업자들은 열심히 LTE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부는 계속해서 와이브로 도입을 강요한 것이 대표적이다. 트렌드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과 마스터플랜,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독립성 역시 도마에 올랐다. 방통위 상임위원은 대통령, 여야당이 추천한 인사로 구성된다. 여당 추천위원이 한명 더 많은 상황에서 민감한 이슈는 무조건 여당쪽 의견이 반영된 것 역시 합의제 정신을 훼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으며 양측 모두 정당의 입장을 대변할 뿐 산업의 논리와 입장은 반영하지 못했다.
◆흩어진 기능 모으고…독임제로 강력한 추진력 확보해야=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산업계, 학계 모두 ICT 정부조직을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시점도 얼추 예상이 가능하다. 연말 18대 대통령 선거 이후 가시화될 전망이다. 남은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합의제의 피로도 때문인지 모르지만 업계에서는 예전과 같은 독임제를 선호하고 있다. 학계 및 공무원 사회에서도 독임제가 나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방통위가 예전 정통부에 비해 업무 효율성 및 추진력이 떨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지적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산된 정통부 기능을 한 곳으로 합치는 방안 역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 대통령 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내놓은 '국가정보화 거버넌스 개편방안'에서도 방통위를 포함한 IT전담부처를 설립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으로 보고 있다.
학계에서도 각 부처별로 분산된 ICT 기능을 새로운 독임부처에 포함시키는 방식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방통위 중심의 헤쳐모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독임부처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규제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포함시킬지 말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독임제 안에 규제위원회를 두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물론, 통합부처가 신설될 경우 업무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는 반면, 조직의 비대화 및 권한 집중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신중한 논의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한편, 이 과정에서 현 체제의 유지를 주장하는 일부 부처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명방 정부의 ICT 정부조직 개편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정보화 지수, ICT 산업 수출 확대 등이 근거이다. 하지만 전체 국가적 차원에서 ICT 정책기능 분산은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ICT 관련 업계 중 그 어느 곳도 현 체제유지를 환영하는 곳이 없다는 게 증거가 될 수 있다.
정부 정책기능의 분산 및 통합은 기업의 조직개편과는 사뭇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지금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정부가 앞장서 이뤄낸 IT 강국의 근간을 정부 스스로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ICT 거버넌스 개편이 신중하면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