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최근 경영 프로세스혁신(PI) 및 공급망관리(SCM) 분야 전문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삼성전자 출신인 그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차이를 묻자 “고객이 다르고, 이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삼성전자의 고객은 TV나 노트북 따위의 완제품을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베스트바이와 같은 유통업자다. 비단 삼성전자 뿐 아니라 LG전자를 포함해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는 “삼성전자의 고객 만족 기준은 좋은 제품을 싸고, 빠르게, 그리고 제때 공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온 삼성전자의 프로세스 및 SCM 역량 증대 노력은 2000년대 들어 결실을 맺고 고객을 만족시켰다. 이는 곧 삼성전자 제품이 매장에서 일본 기업의 제품을 밀어내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의 TV 사업이 세계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의 우수성도 있지만 이러한 프로세스 및 SCM 혁신 활동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전 임직원이 SCM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사내 분위기를 다잡았다. 막대한 IT 투자로 회사 내외부 환경을 평가할 수 있는 가시성을 확보하는 한편 고객 만족을 기준으로 핵심성과지표를 정립했다. 삼성의 핵심 성과급제인 초과이익분배금(PS)과 생산성격려금(PI) 역시 이러한 프로세스 혁신 과정에서 도출된 내용이다.
물류, 구매, 개발, 판매, 생산 등 수요공급망 내 모든 프로세스가 지켜야 할 규칙도 명확하게 정해놓았다. 100대를 팔겠다고 계획서를 올린 영업 담당자가 두 배인 200대를 팔고 돌아왔을 때 벌을 주는 이유는 계획대로 실행해 결손을 없애기 위함이다.
전 세계 20만명의 임직원을 둔 거대 조직을 구멍 가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프로세스 및 SCM 혁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제품을 싸고, 빠르게, 그리고 제때 공급해 그 어떤 기업보다 더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경영 혁신 사례는 다양한 글로벌 제조 기업들 가운데 최우수 사례로 손꼽힌다.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도 삼성전자의 혁신을 벤치마킹하고 이를 전사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떤가. 그는 “전 세계 300개가 넘는 직영 매장을 갖고 있는 애플은 말 그대로 최종 소비자가 고객인 만큼 경영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가 타 기업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혁신의 초점을 제품에 맞추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룰을 바꾸는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것들을 내놓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애당초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고객(유통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삼성전자의 고객은 애플 제품을 팔지 못해 아우성이다. 삼성전자는 을이지만 애플은 갑 같은 을이며 곧 갑이 될 모양새다.
어쩌면 이해가 상충하는 두 고객(유통업자, 최종소비자)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였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한 채 고객의 개념을 최종 소비자로 바꾸고, 이들을 만족시키는 창조적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스템과 조직, 인력, 평가 방법 전반에 걸친 프로세스를 뜯어고치는 게 지금 삼성전자에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