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종합] 1년 전기료만 200억, 슈퍼컴 6호기 출격…국가 AI·HPC 경쟁력 ‘업그레이드’

권하영 기자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슈퍼컴 6호기 구축 계약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김성수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이 발표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슈퍼컴 6호기 구축 계약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김성수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이 발표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정부가 차세대 국가 초고성능컴퓨터(이하 슈퍼컴) 6호기 구축에 본격 착수했다.

이번 6호기 구축은 단순 속도 향상을 넘어, 고도화되는 인공지능(AI) 수요에 대응하고 공공 연구 생태계의 디지털전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다. 특히 6호기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의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설계된 최초의 공공 슈퍼컴으로, 국내 연구자들에게 글로벌 경쟁의 동등한 출발선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간 국가 슈퍼컴 6호기 구축 계약이 지난 12일 최종 체결됐다. 사업비는 5년간 유지보수비 780억원을 포함해 총 3825억원이다.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사전브리핑에서 김성수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국장)은 “세계적 수준의 슈퍼컴 확보로 AI 일상화와 계산과학 고도화에 대응하고, 혁신적 연구개발(R&D) 성과 창출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퍼컴 6호기는 세계적인 GPU 공급난을 뚫고 도입이 확정된 고성능컴퓨팅(HPC) 시스템으로, 내년 상반기 중 구축 완료를 목표로 한다. 연산 성능은 600페타플롭스(PF), 저장 용량은 205페타바이트(PB), 네트워크 속도는 400기가비피에스(Gbps) 이상으로, 현재 운영 중인 슈퍼컴 5호기보다 23배 빠르고 저장 능력은 10배 이상 향상된다.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 10위권 진입도 기대되고 있다.

이번 6호기의 핵심은 GPU 중심 구조다. 그간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의 계산 시스템이 주류였던 것과 달리, 6호기는 엔비디아 ‘GH200’ GPU 8496장을 도입해 본격적인 GPU 기반 슈퍼컴퓨팅 시대를 선언했다. 이식 KISTI 원장은 “기존 CPU 시스템은 전력과 공간 소모가 크고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지만, GPU 기반 시스템은 연산 효율이 뛰어나고 최근 폭증한 AI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태영 KISTI 슈퍼컴퓨팅인프라센터장은 “GPU 고성능 연산은 항공, 기계, 유체역학, 고에너지 물리, AI 대규모 모델 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되고 있으며, 이번 시스템은 이를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시스템 운영 소프트웨어도 오픈소스 기반으로 통합 제공돼 연구 현장 적용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슈퍼컴 6호기 가동 이후 자원은 연구계획서 기반의 전문가 평가를 통해 배분된다. 과기정통부는 학술·기초 R&D(40%), 공공 현안 해결(20%), 산업계 수요(20%) 등을 기준으로 자원 활용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업의 경우 일부 유료 과금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인공지능 연구에는 전체 자원의 약 30%를 우선 배정할 방침이다.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슈퍼컴 6호기 구축 계약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오른쪽부터) 김성수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이식 KISTI 원장, 홍태영 KISTI 슈퍼컴퓨팅인프라센터장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슈퍼컴 6호기 구축 계약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오른쪽부터) 김성수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이식 KISTI 원장, 홍태영 KISTI 슈퍼컴퓨팅인프라센터장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이러한 슈퍼컴 6호기 사업은 단순한 장비 구매가 아니라, 향후 10년 한국 과학기술 R&D 인프라의 기반을 새롭게 설계하는 ‘인프라 리셋’이란 점에서 의의가 크다. 최근 생성형 AI, 디지털 트윈, 양자 시뮬레이션 등 데이터와 연산 자원이 집약되는 연구 분야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공공부문에서는 고성능컴퓨팅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고가의 GPU를 개별 조달하거나,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연구데이터 유출 및 예산 낭비 우려가 컸다.

김 국장은 “기존에는 CPU 기반으로 하다 보니 가속기 없이 거대 계산을 수행해야 했고, 일부 보조 시스템을 함께 써야 했다”며 “이번 6호기는 GPU가 함께 들어오면서 훨씬 효과적으로 계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AI, 자율주행, 기후변화 예측처럼 수억~수천억 개의 파라미터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이러한 고성능 슈퍼컴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원자력발전소의 디지털트윈 모델링 등 파라미터가 크게 늘어나는 다양한 분야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력·냉각 등 대규모 시스템 운영을 위한 기반도 준비됐다. 이 원장은 “전기 용량은 한 15메가와트(Mw) 정도, 장비가 들어오기 전에 전기 인입 등 물리적인 부분은 모두 해결될 것”이라며 “내년 예상 전기료가 약 200억원 정도로, 운영 비용 측면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슈퍼컴 6호기는 CPU, 메모리, 스위치 칩까지 모두 직접 수냉 방식으로 냉각되며, 물이 칩 위를 직접 순환하는 구조”라며 “ 에너지 효율 면에서 기존 대비 90% 이상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지난 3월 발표한 ‘AI+S&T 활성화 방안’을 통해, AI 중심의 글로벌 R&D 전환에 대응하고자 신소재·신약·반도체 등 8대 분야에 특화된 AI 모델을 개발하고 과학기술 전반의 AI 활용을 확산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슈퍼컴 6호기 구축이 완료되는 즉시, 이러한 AI+S&T 활성화 R&D 수요도 신속히 지원할 방침이다. 아울러 누적된 GPU 수요를 분산·해소하기 위해, 출연연 등이 공동 활용할 수 있는 분야별 맞춤형 ‘AI+S&T 공공인프라’ 구축도 재정당국과 협의 중이다.

한편, 이번 사업은 지난 수년 간 예비타당성 조사와 예산 증액 등 우여곡절 끝에 추진된 결과다. 이식 원장은 “GPT 이슈 이후 GPU 수급이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 초기 1000억원 안팎이던 예산을 4500억원 가까이 증액해야 했던 과정이 있었다”며 “연구자들이 자원 부족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이번 6호기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ISTI는 ‘타키온’ ‘누리온’ 등 이전 슈퍼컴들이 공모를 통해 이름을 지은 전례를 따라,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에 슈퍼컴 6호기의 정식 명칭을 공모할 계획이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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