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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글로벌 AI 동맹’...정치권도 정쟁 속 설익은 AI 논의

오병훈 기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4일 오전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갖고 손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4일 오전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갖고 손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중국발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 파장에 국내 업계와 정치권의 대응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딥시크 등장이 본격적인 AI 미중 패권 경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상황 속, 한국의 지정학적 영향력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는 분위기다.

당장은 미국 진영 기업과 스킨십을 통해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전략을 택한 분위기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 오픈AI 수장을 만나 협업을 논의했으며, 정치권에서는 딥시크 파장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경정 예산(이하 추경) 편성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다만, 딥시크 파장 직후 한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동맹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된 만큼 만큼, 업계에선 명확한 전략을 내놓기보단 서로의 필요성을 확인하며 협업 가능성을 엿보는데 그친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지속된 정쟁 분위기 탓에 명확한 정책 방향성 설정에 애를 먹고 있는 눈치다.

전날(4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을 찾아 국내 주요 기업 수장을 만나 AI 협업에 대해 논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그룹 회장, 정신아 카카오 대표 등을 만나 AI 협력을 위한 제반 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딥시크 대응을 위한 국가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정책적 지원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앞서 지난달 31일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AI 3대강국 도약 특별위원회(이하 AI 특위)’를 중심으로 딥시크 대응 전략 모색 간담회를 개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같은날 상설 위원회인 ‘과학기술혁신 특별위원회(이하 과기혁신특위)’를 출범한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딥시크 대응책 마련 긴급간담회를 개최했다.

중국 AI 급부상에 ‘한미일 연합’으로 대응...빨라진 업계 발걸음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미국 주요 AI 기업인 오픈AI 수장 올트먼 CEO의 방한 행보다. 오픈AI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 출범 직후 대대적인 지원책 주인공으로 낙점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한국 방문이었던 탓에 국내 업계 관심이 더욱 쏠렸다.

올트먼 CEO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국내 주요 기업 인사들을 만나며 빡빡한 일정을 보냈다. 아시아 주요 IT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 내 관련 기업 수장들을 만나 다양한 협력 방식을 모색하고, 아시아 시장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올트먼 CEO는 먼저 최태원 회장과 만나 AI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통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내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이다. 오픈AI는 챗GPT 생태계를 위한 자체칩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두 기업의 필요성이 맞아 떨어지는 만큼, 이날 회동을 계기로 구체적인 협업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란 업계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트먼 CEO는 이어 카카오에서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카카오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에서는 AI를 활용한 메시지 서비스 ‘카나나’ 공개를 앞두고 있으며, 카나나는 다양한 대형언어모델(LLM)을 활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으로 개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오픈AI의 챗GPT 시리즈나 오원(o1), 오쓰리-미니(o3-mini)와 같은 고도화된 대형언어모델(LLM) 기술이 절실하다.

올트먼 CEO는 오후에 최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며 사법리스크를 덜어낸 이재용 회장과도 만났다. 이재용과 올트먼의 만남이 특히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오픈AI와 함께 ‘스타게이트’를 설립하기로 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회동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미국 정부 지원 아래 설립하기로 한 AI 합작사다. 이재용과 올트먼, 손정의 3자 회담을 통해 삼성전자도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협력사로서 활약을 하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카오와 오픈AI는 4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에서 전략적 제휴(Strategic Collaboration) 체결을 발표하는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날 간담회에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왼쪽)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직접 참석해 양사의 협력 방향성을 공유했다. [ⓒ 카카오]
카카오와 오픈AI는 4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에서 전략적 제휴(Strategic Collaboration) 체결을 발표하는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날 간담회에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왼쪽)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직접 참석해 양사의 협력 방향성을 공유했다. [ⓒ 카카오]

아쉬운 점은?...흐릿한 연대 윤곽 “논의 초기 단계, 구체 사항은 아직”

미국 주요 AI 기업이 딥시크 파장이 글로벌 시장을 덮친 이 시점, 한국을 방문해 국내 주요 기업을 만난 상황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오픈AI를 통해 중국 주변국과 스킨십을 늘리며 지정학적 견제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수혜를 한국 기업 입장에서 누릴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이번 올트먼, 손정의 한국 방문은 대면식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각자의 필요성을 안고 가능성을 살피기 위한 초기 논의가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기업과 회동을 마친 인사들의 입에서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보다는 “협력 확대”나 “좋은 논의를 나눴다”는 등 두루뭉술한 답변이 주를 이뤘다. 스타게이트 및 반도체 협력 등 거대 산업 기반 논의를 진행한 만큼 구체적인 회담 내용을 공개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협력 방향성이나 목적 등 조차 드러내지 않으며 유독 말을 아낀 모습이다.

올트먼 CEO는 최태원 회장과 회담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멋졌다(wonderful)”며 짧게 답했으며, 한국 시장 확대 전략을 묻는 질문에도 “물론”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대담 이후 진행된 언론 질문에서도 구체적인 협력 범위나 방안 등에 대한 질문에는 애매한 답변을 이어갔다. 손정의 회장 또한 이재용, 올트먼과 회동 이후 투자 요청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잠재적 협업 논의만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회는 4일 10시 9간담회실에서 ‘딥시크 쇼크 대응과 AI 발전 전략’을 주제로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회는 4일 10시 9간담회실에서 ‘딥시크 쇼크 대응과 AI 발전 전략’을 주제로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정치권, 어수선한 정쟁 속 연일 ‘추경’ 메아리

정치권에서는 연일 추경 필요성을 피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추경안을 두고 국회와 정부가 논의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AI 산업 진흥을 위한 대대적인 추가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는 취지다. 여야는 공통적으로 “정쟁 없이 AI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및 내란죄 수사 등에서 파생된 정쟁 분위기는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어수선한 정국 탓에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성을 되풀이하면서 설익은 논의만 지속하는 모습이다.

먼저, 국민의힘 AI특위 에서는 반도체나 에너지 지원 정책을 통해 딥시크 파장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31일 열린 AI 특위 긴급 간담회에서 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국민의힘)은 “한국은 미국, 중국과 비교해 AI 인력과 투자액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업계가 필요로 하는 법안을 만들고, 중장기 연구개발(R&D) 사업에 정부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AI 정책의 걸림돌로 야당을 지목하는 등 날선 정쟁 칼날도 숨기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혼란한 정국 속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며 “반도체 특별법과 ‘에너지 3법’(전력망확충특별법·고준위방폐장법·해상풍력특별법)은 거대 야당 몽니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AI와 관련해 정쟁 내려놓고 산업 발전 현안에 집중하자는 목소리를 냈지만,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이다. 인재 양성을 위한 추경, 반도체 확보를 위한 추경 등 다양한 방안을 제안하면서도, 큰 AI 산업 생태계의 전반적인 지원책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여야 정치권은 주로 하드웨어 분야의 AI 반도체 확보 등에 집중했으나, 딥시크 파장으로 하드웨어 못지 않게 소프트웨어 산업 지원 중요성도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른 명확한 정책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과기혁신특위에 참여한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은 “하드웨어 반도체에 집중됐던 AI 담론을 소프트웨어까지 확장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딥시크 파장 의미는 AI 소프트웨어 성장 시계는 더 빨라지고, 사용자 선택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보다 빠르게 명확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병훈 기자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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