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다시 흐르는 국회 시계…AI법안 본회의 종점 ‘코앞’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령 사태에서 비롯된 탄핵 정국 속에서도 ‘AI 교과서’ 규정이 포함된 교육법을 비롯한 AI 기본법 등이 국회 법사위 심사를 통과하면서 최종 제·개정을 앞두고 있다. 어수선한 국회 상황에서 양당 의원들이 ‘일하는 국회’를 보여주기 위해 각종 계류 법안들을 처리하는데 속도를 높이면서 당초 여야 정부부처가 목표했던 관련 법안 연내 통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전체회의를 열고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교육법 개정안)’과 ‘인공지능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 한 기본법안(이하 AI 기본법)’ 등 타위법안을 심사하고 의결했다. 두 법안 모두 핵심 쟁점으로 AI 주요 현안을 다루고 있던 만큼, 법사위 의원 간 논쟁도 뜨거웠다.
결과적으로 의결된 두 법안은 오는 30일 열리는 임시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법사위 문턱까지 넘은데다가 법안 의결 주도권을 거대 야당에서 쥐고 있기 때문에 본회의에서도 별다른 변수 없이 최종 제·개정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야 정부부처 합심한 AI기본법…업계 “40조 등 우려 요소 여전”
AI 기본법은 지난 21대 국회부터 산학계를 비롯한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엮이며 입법 과정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사다난한 상황이 이어졌다. 21대에서도 입법 논의가 진행됐으나,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AI 규제’를 강조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총선 일정 등으로 상임위 활동이 둔화되면서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높아지는 AI 산업 진흥 필요성 및 딥페이크 성범죄 등 사회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규제 방안으로 AI 기본법 입법을 서둘렀다. 20여개 AI 기본법이 발의됐으며, 이중 19개 법안이 병합돼 지난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법안소위 및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당초 지난 9일 법사위 타위법안 심사 일정이 잡혔으나,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령 사태 발발을 기점으로 AI 기본법을 포함한 다수 산업 관련 의제가 뒤로 밀려나게 됐다. 이후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국회 양당은 미뤄오던 의제를 처리하는 등 연내 중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 과방위 의원실 관계자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국회가 나태해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각 상임위별 계류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AI 기본법은 당초 연내 통과를 목표로 여야, 정부 할 것 없이 힘쓴 법안이기 때문에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큰 이변 없이 통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AI 기본법에서는 ‘고영향AI’를 중심으로 용어 정의 문제가 최대 쟁점 사항으로 떠올랐다. 고영향 AI는 국민 신체·재산·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AI를 지칭한다. 여기에 더해 ‘영향받는 자’등을 도입해 단지 AI 산업을 이용자와 개발자 이분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AI 영향을 받는 이들도 법 테두리 내에서 다룰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AI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산업 진흥도 AI 기본법에 포함됐다. 글로벌 AI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AI 서비스 개발 및 연구에 대해 법적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외에 필요한 사항은 향후 후속 법령 제정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 과방위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입장이다. 17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해당 법안은 AI 기본법으로 필요하다면 관련해 새로운 법령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방위 간사 자격으로 법사위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현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시민사회나 학계에서 (AI 관련 규제가 약하다)는 우려가 있어 기본권 침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요한 후속 입법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이 재정법에 모든 것을 다 담아내다 보면 기본법 제정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일단 기본법 제정부터 하고 그 이후에 제기되는 문제들은 후속법으로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과방위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AI기본법을 두고 우려를 표했다. 먼저, 고영향AI라는 규제 대상 정의에 대해 가장 큰 우려를 표했다. ‘영향’이라는 표현 자체가 애매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AI 서비스 개발 등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40조 사실조사 조항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40조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장관은 일정 요건(①AI기본법 위반을 발견 및 인지한 경우 ②위반 신고 및 민원이 접수된 경우) 아래서 각종 자료 요구 등 행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다른 법안 조항과 비교하며 AI 기본법 사실조사 요건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타 법에서는 ‘위반 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정도로 표현하고 있으나, AI 기본법은 신고 및 민원 접수만으로 가능해 자칫 과도한 사실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단순 민원 접수로 현장 조사 실시가 가능하게 되면 조사권 오남용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또, 타법과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꼭 다시 뜯어봐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조사 대상에 대한 보호 조항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는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사실조사 절차를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는 것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정부의 사실조사 방법 및 내용 측면에서 행정조사기본법을 통해 기본권을 보호받게 된다.
말많고 탈많던 AI교과서…결국 ‘교육자료’로 격하
교육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은 AI교과서에 대한 ‘교과서’ 지위 부여 여부였다. 정부는 AI교과서를 정부 중대 교육 정책으로 삼고, 다수 출판사 및 AI 기술 기업과 함께 AI교과서 검정까지 마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교육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AI교과서의 효용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학생들 디지털 창의 역량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오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생을 대상으로 AI 교과서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학부모 단체와 전국시도교육감협회 등의 반대가 있었으나, 교육부는 일부 과목에 대한 도입은 제외·연기하는 등 방법으로 AI 교과서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육위원회(이하 교육위)에서는 AI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교육법 개정안을 상정해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교육부를 비롯한 국민의힘 측은 AI 교과서가 교과서 지위를 인정해야 안정적인 정책 집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학부모 단체 반대를 의식한 의원들은 “현재 AI 교과서 정식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토대로 AI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인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내세웠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 통과될 경우 AI 교과서는 교과서로서 지위를 잃어 의무 배포되지 않고, 학교장 재량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된다.
17일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 타위법안 심사에서 송석준 의원(국민의힘)은 해당 법안 심사 과정에서 “학교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부는 오랜 연구와 검증을 통해 추진한 정책이다”라며 “교육부가 교육 평등의 원칙 제대로 된 AI를 활용한 취지가 훼손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애써 수주해 준비한 정부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AI 교과서를 완성시키더라도, 실질적으로 AI교과서를 도입하는 것은 학교장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확실한 수요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 교과서는 출판 업계와 AI 기술 기업 등이 합작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검정 과정을 거쳤는데, AI 기술 기업의 경우 스타트업인 경우가 대부분인데다가 해당 정책을 위해 소모한 재원 비중이 높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AI 교과서 사업에 참여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정국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사내에 정책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당장 정책 방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 할 일을 하자는 분위기”라며 “관련 법안에 따른 업계 영향이 어느 정도 일지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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