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 위한 폐지'…뜯어보면 제2의 단통법? [IT클로즈업]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더 큰 규제가 탄생했다.”
단통법 폐지안이 국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직후 업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악법이라 명명되던 단통법 폐지안이 지난 21일 국회 첫 문턱을 넘었지만, 업계예선 벌써부터 반발이 크다.
현행 단통법의 ▲제3조(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제1항 제3호 제외), ▲제4조(지원금의 과다 지급 제한 및 공시) ▲제5조(지원금과 연계한 개별계약 체결 제한)을 제외하고, 기존 단통법의 대부분 조항이 전기통신사업법에 그대로 이관되면서 사실상 ‘제2의 단통법’이 탄생했다는 평가다.
이용자에 대한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조항만이 제외돼 가계통신비가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폐지를 위한 폐지가 되어선 안된다며 정부와 국회에 신중한 검토를 당부하고 있다. 단통법 폐지의 목적을 분명히하고,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단통법 폐지시, 소비자 체감 통신비 오히려 늘수도
현재로선 단통법이 폐지되면, 단통법 제정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같은 시기에 누군가는 공짜폰을 사고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장년층은 100만원 이상을 주고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지원금 차별을 유발한 불투명한 유통구조는 단통법 제정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안의 핵심이었던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조항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물론 병합안은 선언적 의미로 ▲거주 지역 ▲나이 ▲신체적 조건 등의 사유로 부당하게 차별적인 지원급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남겨뒀다. 하지만, 이는 상식적인 내용으로 실질적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여야가 이번 단통법 폐지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완전 시장 자율화마저 막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말 지원금의 차별적 지급이 나쁜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비자 편익이 오히려 증진할 수도 있다. 단통법은 유통채널이 소비자에 지급할 수 있는 추가지원금 지급 한도를 공시지원금의 15%로 제한해 오히려 소비자 편익만을 줄였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단통법 폐지에 따라 소비자 편익이 증진할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당장 통신사가 단통법 제정 이전의 수준으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단통법 제정 이후 통신사와 통신사, 통신사와 제조사간 담합 구조가 더욱 견고해진 가운데 다시 지원금 경쟁을 통한 가입자 확보 싸움을 벌일 이유가 있냐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폐지 이후 일시적으로 단말 지원금이 증가할 순 있지만, 그나마도 고가요금제와 고가단말에 집중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이 경우 소비자의 체감 가계통신비는 단통법 폐지 이후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단말 할인(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 통신비 절감 혜택을 주는 '선택약정 할인제도'의 법적 근거도 사라졌다. 관련 법 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됐지만, 이 과정에서 ‘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의’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이에 병합안에는 ‘지원금을 받지 않은 이용자에 요금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적혔다. 즉, 통신사는 꼭 선택약정 할인이 아니라도 요금할인의 효과를 주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 제조사·유통채널 등 사업자 규제는 오히려 강화
소비자 후생 증대는 둘째치고, 단통법 폐지가 시장 자율 규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여야는 이통사와 제조사 간 담합 구조를 해소하고 투명한 단말 유통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이통사가 제조사의 장려금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의무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시장 자율과 시장 규제가 한 법에서 공존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통신사와 달리 단말기 제조사가 유통채널에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는 공시되지 않았다. 제조사가 해외시장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면서다.
제조사 입장에선 예컨대 보조금 30만원 가운데 제조사의 보조금이 10만원이라면 소비자가 단말기 가격의 10만원이 거품이라고 여길거고, 이는 결국 전세계 시장에서 보조금만큼 출고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 일각에선 장려금 관련 자료 제출이 의무화되는 경우 오히려 보조금을 줄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휴대폰 판매점에 대한 규제도 유지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자 판매권한을 승낙하고 법령 준수여부 등을 관리하는 이른바 '사전승낙제'를 도입했지만, 그 대상이 유통채널 중 판매점에만 한정돼 실효성이 지적됐다.
‘사전승낙제’는 전기통신사업자가 ‘판매점’을 대상으로 적격성 여부 등을 심사한 뒤 판매권한을 승낙하고 법령 준수여부 등을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불법 또는 편법 영업,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이용자 피해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사전승낙제의 적용 대상은 ‘판매점’으로 한정돼 유통망의 실태를 사실상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이에 유통업계는 현재 판매점에 한정된 사전승낙제를 폐지하고 판매점·대리점·온라인채널·중고폰·알뜰폰 사업자가 참여하는 유통망 신고제로의 전환을 제안해왔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단통법 폐지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직후 입장문을 내고 “지난 10년간 유통망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점들이 이번 법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번 폐지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나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고, 여야 간의 담합과 성과주의에 기반한 졸속 행정의 결과로 보여진다. 이번 법안이 유통업계와 소비자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과 '단통법 시즌2'로의 전락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완전무결한 제도 없다지만…"폐지 목적 분명히해야"
업계에선 여야가 합의하에 단통법 폐지안 통과라는 성과를 이뤄냈지만, 폐지를 통한 목적은 오히려 불분명해졌다고 보고 있다. 대의적 차원에서 서로 양보한 것이 아닌, 각자의 더 큰 이해관계를 위해 한발씩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용자를 지원금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사라졌지만, 소비자 편익 증진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자율 규제를 표방했지만 오히려 제조사에 대한 규제는 더해졌고, 유통채널에 대한 규제는 유지됐다.
또 수차례에 걸쳐 단통법 폐지에 따른 후속조치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지만,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고, ▲가계통신비에 한축을 이루는 단말기 가격을 어떻게 인하하고 ▲지원금 차별을 유발했던 불투명한 유통구조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방안은 부재했다.
물론, 시장을 예단하기 어렵고 이 시장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순 없다. 하지만 단통법 폐지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면 2014년처럼 극심한 혼탁양상이 벌어질 경우 대선 전후 이름만 바꾼 제2의 단통법을 꺼내들지도 모를 일이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단통법 폐지안은 과방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심사를 거친다. 법사위에서 방통위에 공정한 시장 관련 책무를 부여하는 조항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업계는 내달 예정된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즉, 법안을 수정한다면 과방위 전체회의가 마지막 기회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관계자는 “기존의 단통법 중 2~3개 조문만 개정하거나 폐지하면 될 일인데 단통법 폐지라는 외형적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꼴 법 개정"이라며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유인하는 등 목적이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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