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결속력 무너진 전삼노, 앞으로 가야할 길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임금 인상률, 성과급 지급 기준 등에 불만이 쌓이며 삼성전자 사상 첫 파업에 돌입한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조차 공감대를 얻지 못하며 내부 결속력까지 흔들리는 상황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전삼노가 처음 삼성전자 사측과 권익 향상에 대해 논의할 때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노조의 출범과 초기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반전을 맞이한 것은 삼성전자 업황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다소 극단적인 운영이 기폭제가 됐다. 파업 카드에도 사측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HBM(고대역폭메모리) 라인 가동 중지'를 목표로 노조원들에게 파업 참여를 요청했는데, 국가 핵심 기술을 무기로 삼는 것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AI), 고성능 컴퓨팅, 메타버스 등 미래 지향적인 기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HBM은 기존 메모리와 비교해 뛰어난 대역폭과 낮은 전력 소비를 제공함으로써, 데이터 처리량이 엄청난 분야에서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HBM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되고 있다. 최근 AI 시장 성장에 따라 수요가 커지며 국가 경제와 기술 경쟁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HBM 라인의 가동 중지는 단순한 생산 중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가 핵심 기술의 보호와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이를 협상 카드로 내세우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
여론이 싸늘하게 식은 가운데 전삼노 내부적으로 공감대를 얻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HBM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는 경쟁사 SK하이닉스에 밀리며 핵심 공급처인 엔비디아의 퀄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는 등 고전하고 있는데 라인 가동 중단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전삼노 파업 초기엔 약 6500명이 참여했지만, 사흘 만에 350명으로 급감했다.
상황이 밀리자 전삼노는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며 다소 수그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황이 전개될 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하기 위해 분명 필요한 존재이긴 하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영 상황과 업계 동향을 고려한 현실적인 요구사항을 설정해야 한다. 이 같은 방향성이 설정돼야만 노조의 신뢰성을 높이고, 사측과의 협상에서 오히려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삼노 집행부가 보다 현실적인, 국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구사항을 들고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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