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줄고 중국 업체 비중 늘었다…韓-中 소재 협력, IRA FEOC 뚫나 [소부장박대리]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원산지가 중국인 배터리 원료·소재를 수급받는 사례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중국 업체로부터 받는 비중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소재에 대한 중국 업체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하고 이를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업계는 미국 IRA에 따른 해외우려기업집단(FEOC) 지정 결과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모양새다. 당장 FEOC 요건상으로는 현재 택하고 있는 합작법인(JV) 전략에 문제가 없지만 요건에 대한 모호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정부 개입의 범위를 한정짓기 어려운 데다 대선에 따른 변동 리스크가 남아 있는 만큼, 추가 지분 확보·납품 권역 확대 등 다양한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31일 포스코그룹은 중국 CNGR과 합작한 니켈 생산 법인 '포스코씨앤지알니켈솔루션', 전구체생산법인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의 착공에 돌입했다. 이번 착공은 지난해 6월 체결한 합작투자계약(JVA)에 따른 일환이다. 포스코씨앤지알니켈솔루션,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는 포항 영일만4산업단지에 각각 연산 5만톤, 11만톤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다.
전구체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M) 등 조성으로 혼합된 금속소재다. 배터리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중간재 역할을 한다. 양극재 원가의 약 60%에 달하는 핵심 원료지만, 원료 조달·생산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며 가공마진이 낮은 축에 속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낮은 인건비 등 이점을 갖춘 중국 업체들이 전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소재도 셀도 中과 손잡는다…IRA 뚫은 중국 업체 위상
포스코그룹과 CNGR의 합작은 시장을 과점 중인 중국 전구체 기업과의 협력 확대를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시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응해 원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은 CNGR과 합작한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 외에도 화유코발트와 전구체·음극재 생산을 위한 합작 MOU를 체결하는 등 추가적인 투자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다른 양극재 업체들 역시 중국 업체와의 합작법인으로 관련 대응에 나서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화유코발트와 전구체 공장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새만금산업단지 내 2028년까지 연산 10만톤 규모의 전구체 양산 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바 있다.
에코프로는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거린메이(GEM)의 니켈 제련소에 지분을 투자해 장기적 수급처를 확보하는 한편, SK온-거린메이와 함께 3자간 전구체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자회사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역시 초기 거린메이와 합작해 설립된 이력이 있는 만큼, 관련 협력과 논의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앤에프는 전구체 국산화 비율을 높이며 IRA FEOC 위험 요소를 크게 지웠다. LS그룹과 합작한 엘에스엘앤에프배터리솔루션을 통해서다. 그러는 한편, 중국 민영기업인 CNGR이 모로코에서 짓는 공장에서 리튬인산철(LFP) 전구체를 포함한 중간재 수급을 추진하면서 FEOC에 대한 우려를 최대한 낮추는 모습이다.
배터리 셀 제조사가 추진하고 있는 합작 및 수급 계획에도 중국 업체가 포함됐다. SK온은 미국 법인으로 인조흑연만 채택했던 BTR의 음극재 범위를 천연흑연까지 넓히는 안을 검토 중이다. 관련 BTR의 음극재는 아프리카에서 흑연을 수급해 인도네시아에서 가공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미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모로코에서 야화와 수산화리튬을 생산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당장 FEOC 리스크 없어…실제 적용 사례 나와야 대응 가능"
당초 배터리 업계는 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탈피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IRA 제정 후 전구체·양극재·음극재 등 배터리 광물 원산지가 미국, 미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 한정돼야만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서다. 게다가 미국과 미 FTA체결국에서 수급하더라도 중국·이란·러시아 등 우려국가 정부의 지배지분 25%가 포함된 해외우려기업집단(FEOC)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조항도 추가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그리고 이달 IRA 광물·FEOC 요건에 대한 가이던스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미 FTA체결국 내 생산하는 광물 제련·가공의 부가가치 기준이 기존보다 완화된 데다, 업계가 체결한 한중 합작법인이 FEOC의 명시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경우가 생기고 있어서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FEOC 요건 상 우려국의 정부 관계자가 해당 기업 지분을 25% 가지고 있거나 이에 준하는 지배력을 갖춰야 하는데, 현재 국내 업계가 추진 중인 한중 합작법인은 그런 상황까지는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미중 양국간 관계 변화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당장 FEOC로 지정될 수 있는 명시적 요건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히려 IRA·FEOC 지정이 국내 배터리 업계에 이점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LS 및 엘앤에프·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머티리얼즈·고려아연 등 국내 업계가 전구체를 국산화하게 된 계기가 된 데다, 중국 업체들이 IRA를 우회하기 위한 투자처로 한국을 택하면서 고용 창출 등 이점이 생긴다는 측면에서다.
다만 업계는 이러한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표하고 있다. 한중 합작법인이 당장 FEOC 요건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내년 FEOC 조항이 시행될 때 그 적용 범위가 모호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기차 관세 및 음극재 보복 관세 등 미중 양국간 갈등이 치열해지는 데다, 하반기 대선에 따른 변동이 남아 있다는 점도 지켜볼 대목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업계 내에서는 이미 FEOC의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상황이지만, 최종적으로 미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며 "업체마다 추가 지분 투자를 고려하거나 판매 권역을 달리하는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FEOC가 본격 시행될 시점에 따라 관련 대응 전략도 구체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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