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전산 혁신④] 대기업 공공SW 허용…중견SI업계 ‘사형선고’
정부가 행정전산망 장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디지털행정서비스 국민신뢰 제고 대책'을 마련했다. 장애관리 체계 정비와 인프라 전반을 전면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만큼 국내 IT장비 및 구축업체들로선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디지털데일리>는 이번 정부 발표를 통해 분주히 움직이게 될 ICT 시장을 조망한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정부가 대기업에 공공 소프트웨어(SW) 시장을 열어주기로 하면서, 중견 IT서비스 업계의 충격이 크다. 이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이 오로지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공공 시장을 둘러싼 기업들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당분간 논란이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공공SW 대기업 진입규제 완화…중견업계 우려 커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공공SW 사업의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 방안’은 700억원 이상 공공SW 사업의 경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상출제) 소속 대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소프트웨어진흥법 제48조에 따라, 상출제 소속 기업은 원칙적으로 공공SW 사업 참여가 제한되며, 국가안보나 신기술 등 특정 분야에서만 심의를 거쳐 예외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는 대기업 독점을 막고 중소기업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정부는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을 통해, 설계·기획 사업의 경우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전면 개방하고, 구축 사업도 7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엔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공공SW 사업의 고도화·선진화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그러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기업 진입규제를 통해 공공SW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던 중견 IT서비스 기업들 사이에선 앞으로 시장을 뺏기고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진입규제가 도입된 지난 2013년부터 약 11년간 공공SW 시장을 주도하고 성장해온 아이티센·대신정보통신·메타넷디지털 등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내 공공SW 시장은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이 약 7대3 비율로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정부 발표가 있은 직후, 중견SW기업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대기업참여제한 제도 개편안은 오직 대기업들을 ‘금액에 상관없이’ 전면적으로 공공SW사업에 참여시키겠다는 뜻으로, 현행 소프트웨어진흥법 제48조의 파기나 다름없다”며 “지난 10년간 정부 정책을 줄곧 신뢰하고 투자와 연구를 거듭해 오늘날 각 분야 도메인 기업으로 우뚝 선 중견SW기업들에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고 강력 반발했다.
◆ 중견SW기업들 “정부 정책, 중소기업 육성 취지에 반해”
중견 업계가 지적하는 이번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 방안’의 문제점은 크게 4가지로 꼽힌다.
먼저, 정부는 공공SW 시장에서 7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이 많지 않기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게 중견 업계의 입장이다. 현재 700억원 이상 사업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을 선호하는 발주기관들이 일부러 사업 규모를 키워 대기업을 참여시키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견 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런 원칙도 없는 통합발주와 일괄발주 시스템 속에서는 700억원이란 기준선은 전혀 의미가 없다며 구축 사업과 유지보수 사업을 합치거나, 2~3개년 사업을 한 데 묶어 사업을 발주하는 식으로 700억원을 무분별하게 초과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정부는 안정성 문제 해결을 위해 유지보수 사업 통합발주나 구축·유지보수 사업 일괄발주를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발주기관은 대기업 참여제한 예외심의를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고, 예외 인정시 사실상 700억원 기준선이 무색하게 모든 규모 사업에 대해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우려가 함께 나온다.
또한,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중소기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도입했던 ‘상생협력 평가제도’를 개편했는데 이 역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대형 사업 한정 중소기업 참여지분율을 낮추고 상생협력 배점과 등급체계도 낮추는 내용인데, 이는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하도급 비중이 낮을수록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수주대가 현실화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염려가 나온다. 하도급이 늘어나는 이유는 발주기관의 최저가 정책을 맞춰야 하기 때문인데, 적정한 대가 지급이 이뤄지지 않은 채 무작정 하도급 비중만 낮추라고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견SW기업협의회는 따라서 “700억원 하한선은 사업범위를 응용개발사업(SI)에 한정하고, 신기술 분야에 있어 대기업 참여를 허용해주는 지금의 고시 규정도 전면 삭제해야 한다”며 “또한 통합 일괄발주의 무분별한 도입보다는 필요한 사업만 엄격하게 판단해 통합발주하도록 하고, 중소기업 참여지분율 40%도 7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이 아닌 8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700억원 기준선의 경우 통합발주를 우려하는 중견 업계 입장을 이해하고 있고, 추후 고시에서 개발 사업에 한정해 적용하는 것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면서도 “이번 정책의 가장 큰 목적은 공공SW 사업을 잘 만들어서 국민들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산업 육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의 플레이어들도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경쟁력을 한단계 점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강도현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정책 발표 브리핑에서 기자와 만나 “불만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은 오히려 진입규제를 다 풀어야 한다고 보고, 중소기업은 자신들 성장에 방해가 될 거라고 보고, 이렇게 여러 군의 기업들 의견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부도 판단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중견SW기업협의회는 이번 정부안을 상세히 검토 한 후 추후 정식 대정부 성명서를 채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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