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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결산/커머스] 이커머스 IPO 잔혹사…찬바람 부는 유통가에 쿠팡만 두각

이안나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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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올해 ‘국내 이커머스 1호’ 상장 주인공은 없었다. 코로나19 시기 적자를 감수하며 외형확장에 치중하던 이커머스 기업들은 올해 기업공개(IPO)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불과 1년여 만에 커머스 업계 1순위 목표는 외형성장에서 수익성 개선으로 바뀌었다. 고물가 시대 꾸준한 매출성장과 영업손실 개선은 비단 이커머스 뿐 아니라 오프라인 기반을 포함한 유통업계 전반의 목표였다.

호황기 시절 이커머스 시장에선 모두가 성장하는 듯 보였으나 불황기엔 강자들만 두각을 보였다. 네이버·쿠팡 등 대형 커머스로 쏠리는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했고, 결과는 고스란히 실적으로 나타났다. 적자를 감수한 외형성장 대표 격이던 쿠팡은 올해 연간흑자를 눈앞에 뒀다. 반면 티몬에 이어 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는 큐텐 계열사가 됐고, 과거 이베이코리아에 맞서 ‘토종’ 플랫폼으로 경쟁하던 11번가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 연간흑자 바라보는 쿠팡 독주에 ‘반(反)쿠팡 연대’ 형성?=과거 매년 수천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투자를 이어가는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려에 가까웠다. 이런 분위기는 쿠팡이 지난해 3분기를 시작으로 올해 3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올해 3분기까지 쿠팡 누적 영업이익은 4448억원이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쿠팡은 사상 처음 연간흑자를 달성한다.

이커머스 시장 정체기에도 쿠팡은 분기마다 최대매출을 기록, 전년동기대비 20% 이상 성장을 이어갔다. 올해 초 컨퍼런스콜에서 “오프라인에서도 존재감을 키워가겠다”는 목표를 밝혔고, 실제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이 유통 공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쿠팡이 올해 전통 유통 강자로 꼽히는 이마트 매출을 3개 분기 연속 앞지르면서 국내 유통시장 1위 자리가 뒤바뀔 전망이다.

쿠팡 독주에 긴장하는 건 이커머스나 유통 강자들뿐만은 아니다. CJ제일제당과 LG생활건강 등 제조업체가 쿠팡과 납품단가를 두고 벌이는 갈등도 표면화됐다. 햇반·비비고 같은 CJ제일제당 제품과 LG생활건강 제품은 여전히 쿠팡 ‘로켓배송’으로 이용할 수 없다. 대신 쿠팡은 CJ제일제당 제품을 대체할 중견·중소기업 상품을 발굴해 판매 중이다.

쿠팡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제조업체들은 다른 유통채널들과 협력을 공고화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반(反)쿠팡 연대’로 보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신세계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네이버·컬리·B마트에서 프로모션을 확대하거나 특화상품을 출시했다. 최근 CJ제일제당은 자사몰 기능을 강화해 주문 다음 날 제품을 배송하는 ‘내일도착’ 서비스를 도입했다.

쿠팡 대구 풀필먼트센터 전경 [ⓒ 쿠팡]
쿠팡 대구 풀필먼트센터 전경 [ⓒ 쿠팡]
[ⓒ 11번가]
[ⓒ 11번가]

◆ 이커머스 IPO 완주 ‘전무(全無)’, 새 주인 찾는 11번가=이커머스 호황기 당시 급속도로 성장하던 이커머스 기업들은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모두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해 중순 급변한 투자시장 분위기에 SSG닷컴과 CJ올리브영은 ‘잠정 연기’를 공식화했고, 컬리와 오아시스 중 누가 ‘국내 이커머스 1호 상장’ 타이틀을 가져갈지가 주목됐다.

하지만 결국 올해 이커머스 기업 중 IPO를 완주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가장 먼저 상장할 것으로 관측됐던 컬리는 지난 1월 투자심리 위축을 이유로 상장을 철회했다. 2월 오아시스마켓은 직전 단계인 수요예측까지 진행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역시 연기를 결정했다. 11번가 역시 지난해 주간사를 선정하며 IPO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더 진전된 내용은 없었다.

특히 ‘중위권’ 자리를 굳건히 하던 11번가는 유독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 수익성 개선에 집중해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910억원으로 전년대비 14% 줄였지만 연간 손실은 1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얼어붙은 투자시장에서 대규모 적자는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11번가는 올해 결국 IPO에 실패하고 매각 가능성도 낮아졌다.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11번가 기업가치를 높게 쳐 줄 인수자를 찾아 나섰고 큐텐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결렬로 끝났기 때문이다. 11번가는 출범 이래 처음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SK스퀘어는 11번가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 매각 주체자가 된 재무적투자자(FI)는 다시 11번가 새 주인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마트 연수점 외관 [ⓒ 이마트]
이마트 연수점 외관 [ⓒ 이마트]

◆ 中 알리·테무 공습...유통 공룡은 다시 ‘오프라인 강화’=큐텐은 지난해 티몬에 이어 올해 초 인터파크 커머스와 위메프까지 인수했다. 큐텐 계열로 뭉친 ‘티메파크’는 큐텐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를 활용해 해외직구 공략에 나섰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국한하지 않는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 플랫폼을 목표로 한 셈이다. 그러나 크로스보더 플랫폼 성장 전략도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플랫폼 업체들이 새 변수로 떠올랐다.

‘초저가’를 내세운 테무는 지난 7월 국내 상륙 후 약 4개월만에 265만명 가까운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1000억원 투자를 예고하고, 물류센터까지 검토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알리는 국내에서 크로스보더 플랫폼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내 사용자들뿐 아니라 판매자들까지 유입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커머스 시장이 정체됐음에도 불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신세계·롯데 등 전통 유통공룡들은 먼저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판단을 내렸다. 백화점·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들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다시 강화해 ‘구매력(바잉파워)’을 확보하려는 모습이다. 이커머스는 공격적인 성장보다 숨고르기를 하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디지털 피봇팅’ 원년을 언급했던 신세계그룹은 다시 오프라인에 집중한다. 올해 선임 된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회사 모든 물적·인적 자원을 이마트 본업 경쟁력을 키우는데 쓸 것”이라며 “한동안 중단했던 신규 점포 출점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롯데쇼핑도 이커머스 키우기에 속도를 내는 건 아니다. 오카도와 협업한 전국단위 물류센터 계획은 2030년이 돼서야 완성될 전망이다. 고물가 시대 온·오프라인 유통가 전체가 ‘생존’에 몰두하고 있다.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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