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주도 검정고무신방지법, 다른 정부부처·업계는 ‘신중론’…왜?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지난 3월 ‘검정고무신 사태’를 계기로 창작자의 불공정 계약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건강한 문화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문체부를 제외한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같은 정부부처와 산학계는 일제히 이 법안에 우려를 표한다.
공통적으로 지적된 쟁점은 사적 계약에 대한 과도한 공적 개입과 포괄 규제 및 중복 규제 문제다.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이라 불리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이중 규제 가능성을 제기한 업계뿐 아니라, 정부부처 간에도 이견을 보였다.
앞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불발되면서 문체위에 다시 계류 중이다. 지난 7월 중순엔 국무조정실이 문체부, 방통위, 과기정통부 측을 불러 문화산업공정유통법 1차 조정회의를 주관하기도 했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지난 3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법정 공방을 벌이던 도중 별세한 사건을 계기로 문체부가 추진 중인 법이다. 현재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콘텐츠산업진흥법’ 등엔 콘텐츠 제작·유통방식 다양화에 따른 구두계약 관행·도제식 관례 같은 구조적 한계를 감안해 공정거래 질서 관련 조항들이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들 조항이 강제력 없는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개별 법령에 분산된 내용을 통합해 공정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이 법안 제정 취지다.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상생협력 환경 조성 방안 세미나’에서 이규효 중앙대 교수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 핵심인 사업자 금지행위를 규정한 제13조를 꼬집었다.
이 조항은 불공정행위를 크게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금지행위 ▲문화상품 창작·제작 기반 보호를 위한 금지행위 ▲법 위반사실 신고 및 분쟁조정 신청 등을 이유로 문화상품제작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의 세 가지 유형으로 명시한다.
공정거래법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가 있는 사업자 간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보지만, 이 법안은 특정 기준 없이 사업자가 한 행위 전체를 규율한다는 점에서 제재 수위가 더 높다는 업계 비판이 있었다.
이규효 교수는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문화상품 사업자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문화상품 사업자도 이 법안 제13조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이 법안 취지에 맞게 규제할 땐 진흥과 달리 그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화상품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 적용은 모든 사업자 행위를 규제해 시장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괄 규제와 중복 규제 문제도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이 교수는 “이 법안은 시정명령 불이행 때 이행강제금 부여, 과태료,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어 문체부가 예술인 권리보호를 넘어 시장 규제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경우, 문체부가 시장 질서 규제에 대한 전문성이 더 높은 공정거래위원회 역할까지 해 중복 규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 주장이다.
이 교수는 “개별 산업에 대한 규제 측면에서도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 등에 근거한 방송통신위원회 역할과의 충돌을 초래할 소지가 크다”고 부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리더도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규제적·산업적 측면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우려헀다. 노동환 리더는 “관련 법률과의 충돌로 인한 규제 종복에 대한 명확한 규정 정립이 필요하고, 균형적 관점에서 적용 대상에 대한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 또한 “정부가 공정과 상생을 위한 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 관점이 ‘어느 한쪽으로부터 다른 한쪽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치우치면 오히려 상호 보완과 협력 구조가 흔들린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불공정 유통환경이라는 시장 실패에 대해 방통위 등 기존 소관부처들 대처가 미흡했던 만큼, 문체부가 적극 나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양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애초에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법 내용에 관한 논란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처 간 협의도 많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윤양수 콘텐츠정책국장에 따르면 방통위를 제외한 공정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는 어느 정도 합의를 마친 상황이다. 다만, 방통위 경우 자신들이 소관하는 기관에 적용되므로 중복 규제 우려가 있으며, 방송국 외주 제작사 등에 대해 많은 금지 유형이 새롭게 포함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일관된 입장을 펼치고 있다.
윤 콘텐츠정책국장은 “현재 법안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웹툰과 영화업계 등 각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계속 수정 중”이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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