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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소통에 ‘진심’이었던 SK이노베이션, “어디까지 얘기할지…사실은요”

이건한

SK이노베이션이 정기 주주총회에 신설한 ‘주주와의 대화’를 통해 현장 주주들과 깊이감 있는 대화 시간을 가졌다. 주요 안건의 순조로운 처리는 물론, 경영전략 공유 및 주주 소통이란 주총의 핵심 목적이 고루 달성됐단 평가다.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SK이노베이션은 30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제16기 정기주총을 개최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을 의장으로, SK이노베이션 김양섭 재무부문장, SK온 지동섭 대표이사 사장, SK지오센트릭 나경수 사장 등 주요 경영진들이 참여했다.

이날 주총은 김 부회장의 인사말과 영업보고를 시작으로 지 사장과 나 사장의 2023년 각 사 영업전략 공유, 김 부문장의 주주가치 제고 방안 발표 등으로 이어졌다. 지 사장은 SK온이 ‘압축성장’을 선택한 배경과 관련 성장통의 해결 방안을, 나 사장은 SK지오센트릭의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중심 ‘그린 비즈니스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 '주식교환' 방식의 새로운 주주가치 제고안 등장...주가 '화답'

이날 좌중의 이목이 집중된 건 SK이노베이션이 내놓은 새로운 형태의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기존의 배당성향 30% 지향 목표 대신 ‘주당 배당금 최소 2000원 이상’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자회사 SK온의 IPO(기업공개)와 연계한 모자회사의 주식교환 방안을 제시했다.

주식 교환은 SK이노베이션이 SK온 IPO(2025년 이후) 시점에 SK이노베이션 주주들로부터 자사 주식을 사들이되, 현금이 아닌 SK온 주식을 대신 주는 방식이다. 사들인 자사주는 이후 소각 절차를 거친다.

이는 SK온의 물적분할을 반대했고 IPO 이후 고성장을 기대하는 주주들에겐 SK온 주주권 행사 기회를 선제적으로 부여하고, SK이노베이션 주식을 유지하는 주주들은 자사주 소각에 따른 주가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모자회사의 주식교환 방식은 기업의 물적분할 시 기존 주주 보호를 위해 정부와 한국거래소에서 권장하는 방식이며 SK이노베이션이 처음 시도한다. 이 같은 방안 공개 후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전일 대비 13.8% 급등했다.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질문회피 없었다..."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이어진 주주와의 대화에선 앞서 발표한 내용들에 대해 경영진과 현장 주주 간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다.

한 주주는 “경쟁 배터리 기업들은 밸류체인 수직계열화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SK 계열사 내에서 분리막과 동박 등은 내재화됐지만 양·음극재와 같은 핵심 소재 대응은 부족해 보이는데 배터리 벨류체인의 추가 구축 계획은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지 사장은 “내재화는 크게 ‘차별적 기술력으로 경쟁 우위에 나설 영역인지’, ‘수급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지’,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란 측면에서 검토하게 된다”고 말했다. SK온은 우선 수급 안정화를 중요하게 보고 관련 내재화 방안을 꾸준히 검토 중이란 설명이다. 관련해 양극재, 전구체와 같은 핵심 소재는 중국 합작회사(JV) 외 몇 군데 투자를 비롯해 수급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더불어 우리는 배터리의 성능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는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SK온 차원의 내재화는 아니지만 그룹 차원에서 밸류체인상 필요한 내재화를 진행하고 있다. (타사보다) 기술에 더 기초를 두는 방향이라고 보면 된다”고 부연했다.

다른 주주는 “최근 SK온의 차입금 규모가 크게 늘고 있고, 단기 차입금은 1년 사이 10배가량 늘었는데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김 본부장은 “단기차입금이 증가한 이유는 지난해 금융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단기 차입금을 일단 확보해 활용했다”며 “올해는 한투PE 통해 프리IPO를 추진하면서 1조2000억원 이상 외부 조달에 성공했고 다른 국내 투자자를 통해 조만간 목표 이상의 외부자금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헝가리, 중국 옌청 공장, 미국 포드와의 JV 설립 이슈 중 헝가리와 옌청은 자금 조달이 거의 마무리 됐고 미국은 50% 이상을 정책 자금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나머지 절반도 포드와 분담하며 배터리 시장의 투심이나 재무상황을 고려할 때 큰 무리가 없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주주들이 IPO 반대할 시 포기할 것인지’, ‘SK이노베이션과 SK온의 주식교환 시 가치 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구주매출에 의한 특별배당에 실패할 경우를 산정하고 있는지’ 등 다양하고 날카로운 질문이 오가며 현장에 긴장감을 더했다.

다만 홀을 가득 채운 인원과 다수의 질문에도 의견 충돌이나 고성 등은 오가지 않았다. 참석 경영진들이 모든 질문에 회피하지 않고 상세한 답변을 내놓은 결과다.

일례로 지 사장의 경우 모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많은 대중 앞에서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사실 SK온이 가격 경쟁을 하다 ‘이 가격에 우리는 도저히 못하겠다. 차라리 경쟁사가 이 가격에 가져가서 고생하면 좋겠어’란 마음으로 빠진 경우도 있었다”고 멋쩍게 말하자 좌중에선 일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각 경영진이 답변 후에는 반드시 “충분한 답이 되었는지” 되묻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이날 주총은 개회 후 2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통상적인 기업 주총이 30분 내외로 종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각사의 전략 발표와 더불어 주주 대화에만 약 1시간을 할애한 결과다.

주총 안건으로 올랐던 ▲김준 사내이사 선임 ▲김주연, 이복희 사외이사 선임 ▲박진회 감사위원 선임 건도 주주들의 찬성으로 모두 통과됐다.


한편 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은 경영체계 전환을 통해 경영진의 평가·보상 시스템을 주가와 연계하는 등 기업가치와 경영활동을 연결한 ‘매니지먼트 시스템 2.0’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SK이노베이션의 모든 경영활동은 기업가치를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한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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