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최근 IT 커뮤니티 클리앙에 ‘(아래아)한글 때문에 골치’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공무원 몇 명 상대하려고 몇 백만원을 투자해야하다니…”라면서 “한 대만 설치하고 공용으로 돌려버릴까”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예상컨데 글쓴이는 소규모 조직을 운영하고 있거나, IT 담당자로 한글과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 ‘한글’을 구매할지 말지 고민 중인 듯하다.
거의 쓰지 않는 소프트웨어임에도 공공기관 때문에 한글을 구매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HWP’를 사실상 표준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HWP 문서로 보내니 이를 보기 위해서는 한글을 사야하고, 공공기관에 문서를 보낼 때도 HWP로 작성해야 한다.
이미 다른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어도, 공공기관과 일을 하려면 중복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 소규모 기업에는 큰 피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불법SW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HWP 는 공공기관 및 협단체, 학교 등 정부와 관련된 조직 이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문서 포맷이다. 사기업끼리 문서를 주고 받을 때 HWP로 보내면, 비웃음거리가 되기 일쑤다. “공공기관이 한글과컴퓨터의 영업본부”이라는 비아냥은 흘려들을 말은 아니다.
특히 HWP는 현재 오직 한글과컴퓨터의 소프트웨어만 지원하는 문서포맷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파일포맷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업계표준으로 HWP가 확산되기를 바란 적도 있었지만, 이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심지어 한컴의 또다른 오피스 소프트웨어인 ‘씽크프리’조차도 HWP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씽크프리로는 HWP 문서를 자유롭게 작성할 수 없고, 겨우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만 지원한다.
공공기관이 특정 회사의 파일포맷을 표준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한컴은 아직 맥OS용 한글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서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맥OS를 이용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공공기관의 HWP 사랑은 현재 정보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액티브엑스와 함께 IT 분야에서 뽑아야할 전봇대인 것이다.
정부가 HWP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포맷의 우수성보다는 한컴이라는 국내 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한글은 한 때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준 소프트웨어이기도 하고, IT거품 붕괴 때 위기에 빠진 한컴을 소비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살려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컴은 국민벤처라고 보기 힘들다. 한컴의 이전 주인들은 배임.횡령 등으로 감옥에 갔고, 현재의 사주는 가족과 측근을 경영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일종의 ‘족벌기업’인 것이다. (관련기사 : 한글과컴퓨터, 족벌경영체제 돌입하나…회장 부부에 딸까지 경영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