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맥 휘트먼 HP 최고경영자(CEO)가 HP의 핵심역량을 ‘하드웨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애플의 성공 이후 IT 업체들이 다들 소프트웨어 관심을 높이고 있지만, HP는 핵심역량인 하드웨어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들립니다.
휘트먼 CEO는 지난 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HP 글로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HP가 올리는 매출 가운데 70%는 하드웨어를 팔아서 나온다”며 “SW와 서비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HP의 핵심 사업은 여전히 PC, 프린터, 서버, 스토리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는 하드웨어를 등한시 했던 전임자(레오 아포테커)와는 다른 목표를 갖고 회사를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핵심 역량이란 경쟁기업이 모방할 수 없는 기업 고유의 경쟁력을 말합니다. 경영학 이론이나 언론에서는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경쟁력이 낮은 분야에 기업의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하는 것이 훌륭한 기업 전략으로 꼽힙니다.
휘트먼 CEO의 생각은 핵심역량 이론을 충실히 실천하겠다는 것입니다. 휘트먼 CEO의 발언 맥락을 볼 때 HP는 한동안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듯 보입니다.
반면 아마존닷컴(이하 아마존)의 행보를 보면 HP와는 사뭇 다릅니다.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에서 시작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쇼핑몰입니다.
아마존은 동시에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입니다. 아마존의 AWS(Amazon Web Service)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업들이 이용할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가장 성숙한 서비스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사실 인터넷 쇼핑몰과 클라우드 컴퓨팅은 별 관계가 없습니다. 상품 거래가 IT시스템 상에서 이뤄지기는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성공하는 역량과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역량입니다.
아마존은 쇼핑몰을 운영하기 위해 서버와 스토리지,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등 IT인프라스트럭처를 뚝딱거리다 보니 IT인프라 관리 기술을 습득했고, 이것을 사업화 시킨 것이 AWS입니다.
이 사례는 핵심 역량 이론과 사뭇 달라보입니다. 핵심역량이론 대로라면, 아마존은 IT인프라 관리 같은 비핵심 역량은 IBM과 같은 훌륭한 IT업체에 아웃소싱하고, 저렴한 상품을 확보하거나 고객을 관리하는데 역량을 더 집중했어야 합니다. 국내에서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한 때 IBM에 IT인프라시스템 관리를 아웃소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핵심 비즈니스가 아닌 IT인프라 관리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고, 여기서 얻은 경험을 비즈니스화 했으며, 결국 핵심역량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아마존은 지난 3월 로봇 전문업체 키바 시스템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물류 로봇을 만들고 운영을 하는 회사입니다. 인터넷 쇼핑몰과 로봇사업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물류가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아마존이 물류 로봇 기술까지 보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존은 키바 시스템의 좋은 고객으로 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존은 로봇 기술을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키바 시스템이 내부 물류 프로세스 혁신에 이용되겠지만, 앞으로 아마존이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로봇 업체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외에 전자책 단말기 시장에서도 아마존은 세계 1위 입니다. 온라인에서 책을 판매하는 것과 전자책 단말기를 만드는 일은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혀 다른 역량입니다. 그럼에도 아마존은 두 가지를 모두 잘 하고 있습니다.
HP는 수십년간 PC, 프린터, 서버 컴퓨터 등 하드웨어의 강자였고, 앞으로도 이 시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인터넷 쇼핑몰 서비스 업체로 시작해,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가 됐고, 전자책 단말기 회사이기도 하며, 로봇 회사로 변신할 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두 회사의 전략 중 어떤 것이 옳다고 아직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주식시장의 평가로만 보면 HP보다는 아마존의 전략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