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된 D램 수요에 커지는 범용 부진 우려…국내 업계 '예의주시' [소부장반차장]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올해 하반기부터 훈풍이 불어올 것으로 예상됐던 범용 D램의 가격이 소폭 하락하면서 메모리반도체 수요 반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줄어드는 모습이다.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의 몸값은 높아지는 반면, 범용 D램은 공급 과잉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어서다.
양극화 현상에 따라 범용 D램 공급망을 형성하는 국내 협력사들도 관련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 업체들이 범용 D램 양산 진입까지 노리고 있어 부진한 실적을 거둬왔던 관련 공급망 내 업체의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9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DR4 8Gb 1Gx8 D램의 지난 8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2.38% 하락한 2.05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 상승 흐름을 탔던 범용 D램 가격이 올 5월부터 7월까지 2.1달러 가격을 유지하다가 지난달 하락했다.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옴디아는 올해 D램이 69.1%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내년에는 12% 성장에 그치는 등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D램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더딘 소비자 제품 수요로 인한 재고 비축 때문이다. 온디바이스 AI를 기반으로 한 AI PC·스마트폰 수요가 일부 시장에서 보이고 있지만, 관련 보급 확대 가능성이 불분명한 데다 침체된 수요를 반등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특히 올해 PC 등 OEM들이 D램 재고를 늘려둔 반면, 관련 판매량이 늘지 못하면서 D램 주문량을 줄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도 "중국의 스마트폰 재고는 과도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소비자들이 새로운 AI 기반 PC를 기다리면서 노트북 구매가 지연돼 시장이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하이퍼스케일용 AI 시장에 활용되는 HBM, DDR5 고성능 D램의 경우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이다. 하이퍼스케일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서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고, 수주 기반으로 책정된 가격 등으로 안정감 있는 성장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HBM 등 고성능 메모리의 성장세는 SK하이닉스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지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SK하이닉스는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 분석에서 점유율이 전분기 대비 3.4%포인트(p) 상승한 34.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1%p 하락했으며, 마이크론은 1.9%p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전세계 HBM 시장의 선두주자로, 금융권에서는 SK하이닉스의 2분기 HBM 매출 비중이 전체의 20%대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D램 제품별 출하 양극화 현상으로 D램 제조사와 관련 공급망 간의 실적 격차가 커지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반도체 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은 높아지는 HBM 비중에 따라 상승 추세를 이어갈 수 있지만, 범용 D램에 의존하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실적은 하락해 전체적인 생태계의 기초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HBM은 메모리 칩 메이커가 전·후공정을 전부 담당하고 있어 관련 공정에 소재·부품 등을 납품하는 기업을 제외한 공급망에서는 수혜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HBM과 관련한 제품을 공급하더라도 기존 범용 D램이 차지해왔던 매출을 대체할 수 없는 만큼,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될수록 관련 국내 공급망 내 기업의 체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미국과의 반도체 무역 갈등으로 범용 D램의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가격 결정권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 제재 등에 따라 최근 자국 장비 구매를 늘리며 공격적인 HBM·범용 D램 라인 증설에 나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HBM 시장의 경우 중국 업체 진입에 따른 영향이 적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범용 D램 시장에서는 생산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우려가 아직 기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높아지는 HBM 수요에 따라 범용 D램 생산이 줄어드는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올해 하반기나 내년께 시장 수요가 살아난다면 범용 D램의 반등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PC 등에서는 메모리가 일부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성수기로 접어든 모바일은 신제품 출시 효과 등에 따라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1c(10나노 6세대) D램 등의 양산을 내년을 목표로 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수혜가 관련 생태계로 넓혀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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