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제2의 '4세대 나이스' 방지하려면
[디지털데일리 서정윤 기자] "문제는 근본적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단가가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이는 곧 대국민 서비스 단절과 혼란으로 이어진다."
지난 6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단가를 다룬 한 토론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토론회는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 갈등이 이어지던 시점에 진행됐다. 각 기업마다 공공 소프트웨어 단가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복지부 시스템 갈등은 끝이 아닌 시작일 거라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부의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서도 오류가 발생했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단가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10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지난 10년간 소프트웨어 업계가 주장했던 내용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수익을 발생시킬 수 없다, 과업이 달라졌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등이다.
◆ 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수익을 낼 수 없을까
업계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수익을 발생시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예산은 기능점수(FP)와 투입인력(M/M)을 중심으로 편성된다. FP단가는 2010년 이후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높아진 물가와 개발자 몸값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익이 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선택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소프트웨어 업계에는 입찰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민간 사업이 많지 않은 편이다.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어떻게든 참여해야 한다. 실제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도 적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다 폐업을 하거나, 사세가 기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중소 IT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체급이 있다 보니 버틸 체급이 되는데 중소·중견기업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현장에서 FP단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 관계자는 "현재 FP단가가 55만3114원인데도 불구하고 30~40만원대로 책정한 중앙부처가 있었다"며 "이런 사안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발주처에서는 AI와 같은 고급 기능을 넣고 싶어하나 그만큼 예산을 책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과업이 달라졌다면 대가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업계는 다른 문제점으로 잦은 과업 변경을 꼽는다. 최초 예산 편성은 프로세스와 지침이 비교적 명확한 반면, 사업 중간에 변경되는 과업에 대한 예산 책정은 모호하다.
앞서 정부는 대가 없는 과업 변경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진흥법에 과업변경심의위원회 개최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발주처 중심 형식적 심의위원회는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사업이 시작된 뒤 과업이 변경된다면, 그 부담은 오롯이 사업자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중견 IT 업계 한 관계자는 "발주하는 분들도 적은 예산을 받아서 본인들이 해야 하는 과업을 모두 집어넣어야 하는 입장이고, 사업자들도 이 정도 금액으로는 과업을 수행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 결국, 기재부가 나서야 한다
그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사업 단가를 현실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단가를 기재부에 가져다주면, 이를 토대로 과업이 변경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과기정통부에서 그동안 많은 제도를 만들었다"며 "제도는 충분히 많으나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근본적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는 기획재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책정된 예산이 과연 현실적으로 적절한 예산인지 다시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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