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률리그 32] 중고제품의 가공판매와 특허권 침해의 관계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자신만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제작 및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있지만, 타인의 제품을 수리하거나 업그레이드 하는 등 가공하여 판매하는 것도 엄연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런데 후자와 같이 타인의 제품을 기초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경우, 그 제품에 대해 타인이 갖는 권리, 예를 들어 그 물건의 특허권이 존재할 때에는 법정 분쟁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특허에 의한 자신의 독점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가공자 입장에서는 이미 특허권자로부터 적법하게 판매된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위와 같은 생각들은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실제 그에 대한 법적인 논의가 존재한다. 어디까지가 위법이고 어디까지가 적법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인데, 그 경계를 파악해 두어야 적법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살핀다.
타인의 특허발명인 물건을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업으로서 생산(제조)하거나 양도(판매)하는 등으로 실시하면 특허권 침해가 성립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특허권자가 판매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이를 업으로서 재판매한다면 형식상 특허권 침해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품을 수리하거나 중고제품을 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모두 위법하다고 보아 전면 금지할 수 없음은 상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당연하다. 그러한 금지는 법 감정이나 법 현실에 부합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산업발전을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있는 특허법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즉 수리나 중고판매와 같이 이미 특허권자로부터 적법하게 판매되어 특허권자가 이미 그 물건에 대해 특허권 행사에 따른 권리를 모두 누렸다고 평가되는 경우, 이후의 그 물건에 대한 통상의 행위에 대하여는 특허권이 모두 소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이는 권리소진이론(exhaustion doctrine) 혹은 최초 판매 원칙(first sales doctrine)으로 불리는 법 원리로서 실제 존재한다. 즉 특허권자가 판매하여 이미 권리를 행사한 물건에 대해서는, 이후의 단순한 중고거래 행위 등에 대하여 특허권자가 다시금 특허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최초 판매 이후 허용되는 '통상의 행위'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또 다른 논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즉 특허권자로부터 적법하게 구매한 물건을 그 형태 그대로 중고거래 하는 경우 그것은 통상의 행위로서 특허권자의 독점권을 새롭게 침해하지 않는 행위라고 평가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마찬가지로 특허권자로부터 일부 부품을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이와 무관한 여러 중고부품들을 취합·조립하여 결국 특허발명과 동일한 구성의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경우에는 특허권자의 독점권이 부당히 침해된다고 평가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나, 그 어느 중간에 위치한 행위들에 대하여 위법과 적법의 경계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 논점이 '수리'와 '재생산(재제조)'의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제조의 특허권 침해 여부: 수리 대 재생산」, 정차호(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4.) 수리는 권리소진의 범위 내에 포섭되는 것으로 적법하다고 평가되지만, 재생산(재제조)는 특허권자의 독점권을 침해하여 위법하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수리이고 어디부터가 재생산인지에 대해서 일도양단적 기준이 적용되기는 어렵다. 특허제품의 기능, 용도 등의 객관적 성질이나, 특허발명의 내용, 특허제품의 통상 사용행태, 가공의 정도, 물건의 수명, 기타 거래 실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 사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 아쉽게도 수리와 재생산의 경계에 대한 특허법적 권리소진 관점에서의 대법원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표법에 대해서는 선례가 존재하는데, 그 판시 내용을 참조하면 일응의 기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후지필름 사건, 대법원 2002도3445 판결).
위 대법원 사안의 쟁점은, 후지필름 등록상표가 각인된 1회용 카메라의 빈 용기를 수집하여 다시 필름을 장전하고 일부 포장을 새롭게 하여 제조·판매한 피고인의 행위가 상표권 침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만약 빈 용기에 다시 필름을 장전하는 행위가 단순한 수리행위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로 평가된다면 그 빈 용기가 상표권자로부터 적법하게 구매된 것인 이상 권리자의 상표권은 모두 소진되어 상표권 침해를 구성할 수 없다. 반면 단순한 수리를 넘어 상표를 출처표시의 용도로 재사용하였다고 평가된다면, 이는 권리자의 독점권에 대한 새로운 침해로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한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표권자 등이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양도한 경우에는 당해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서 소진되고, 그로써 상표권의 효력은 당해 상품을 사용, 양도 또는 대여한 행위 등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나, 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여야 할 것이다」고 판시하여, '원래의 상품과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가 가공이나 수선의 한계점을 판단하는 기준임을 설시하고, 그 판단 근거로는 상품의 객관적 성질, 이용형태 및 상표의 기능 등을 종합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어서 후지필름 장전 사례에 대하여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후지필름이 제조한 1회용 카메라는 , 이에 따라 그 카메라 포장지에도 현상 후 그 몸체는 반환되지 아니한다고 기재되어 있는 사실, 피고인이 이미 수명이 다하여 더 이상 상품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남아 있지 아니한 카메라 몸체를 이용하여 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가공이나 수리의 범위를 넘어 상품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로 본래의 품질이나 형상에 변경을 가한 경우에 해당된다 할 것이고 이는 실질적으로 새로운 생산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등록상표의 상표권자인 후지필름은 여전히 상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즉 1회 사용 이후 수명을 다 하는 그 상품의 객관적 성질에 비추어, 그것에 다시 필름을 삽입해 판매하는 것은 원래 상품의 동일성을 해하는 행위로서 단순한 가공이나 수리가 아닌 새로운 생산행위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평가한 것이다.
위와 같은 기준을 특허법 침해행위에 대입하여 보면, 고장 난 부품을 단순히 수리하거나 특허권자의 부품을 그대로 교체하는 경우 등과 같이 특허발명이 실시된 물건이 동일성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평가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권리소진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를 넘어 이미 수명이 다 한 물건임에도 특허권자와 무관한 부품을 장착하여 판매하는 경우 등의 행위는 새로운 생산행위로서 특허권 침해로 평가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발명을 장려하여 산업발전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권익향상은 물론 현대의 당면 과제인 환경오염이나 탄소중립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재제조(재생산)업을 장려할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고 보이므로, 적정한 기준점이 제시되기를 기대해본다.
<원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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