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데이] 2016.01.07. ‘속 빈 강정’이었던 넷플릭스
디데이(D-Day). 사전적 의미는 중요한 작전이나 변화가 예정된 날입니다. 군사 공격 개시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날. 바로 디데이입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나름 의미 있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던 역사적 디데이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그날의 사건이 ICT 시장에 어떠한 의미를 던졌고,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넷플릭스는 책이나 잡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보고 싶을 때 보고, 또 보고 싶은 부분을 개인이 선택해 보니까요. 우리는 TV를 책이나 잡지 같은 아주 전통적인 매개체로 변화시켜 사용자에게 통제권을 넘겨준 셈입니다”(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현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과거 한 인터뷰에서 한 발언입니다. 당시 그는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를 묻는 질문에 '콘텐츠 소비문화'를 지목했는데요.
실제 월 구독료를 내면 콘텐츠를 무제한 시청 가능한 넷플릭스의 출연으로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주말연속극을 보기 위해 정해진 시간 TV 앞에 모이고 영화 개봉일에 맞춰 극장을 가던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 내가 가능한 시간,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초기 넷플릭스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모습과 사뭇 다른데요. 1997년 월 구독료를 내면 우편을 통해 DVD와 비디오를 무제한 대여해주는 서비스로 넷플릭스의 역사는 시작됐습니다. 당시 사업을 통해 모은 고객의 데이터는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 서비스의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혁신적인 서비스를 앞세워 미국에서 큰 인기를 구가한 넷플릭스는 6년 전 오늘(2016년 1월7일) 한국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콘텐츠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 속에 데뷔한 넷플릭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습니다. 한달간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해볼 수 있는 달콤한 프로모션을 내세웠음에도 불구, 유료가입자의 수는 2016년 말 약 기준 약 8만 명에 그치며 저조한 성적을 거뒀는데요.
넷플릭스의 실패 요인은 한국 시장만의 독특한 특성에 있었습니다. 국내 유료방송 요금이 저렴해도, 너무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 해외 주요 국가 유료방송 요금의 대략 8분의 1 수준이었으니까요. 약 8000원에서 1만원에 형성됐던 국내 유료방송 요금과 비교해 넷플릭스가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가격 외에도 넷플릭스의 최대 약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콘텐츠였는데요. '오징어게임' '지옥' 등 다수의 콘텐츠를 글로벌 흥행시킨 오늘날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월 구독료 9500원을 내고 가입할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가 없다는 게 넷플릭스에 대한 대중의 평가였습니다.
국내 출시 당시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던 한국 콘텐츠 가운데 최신 콘텐츠는 부재했습니다. tvN에서 '도깨비'와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될 때 넷플릭스는 각각 2009년과 2013년 KBS2에서 방영된 '꽃보다남자' '아이리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마저도 기존 유료방송에서 볼 수 있는 주문형비디오(VOD)와 중복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현지화에도 실패했지만 국내에서 기대를 모았던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일부 ‘미드’(미국드라마) 역시 라인업에서 제외되면서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이라는 혹평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 넷플릭스는 언제부터 한국 시장을 장악하게 됐을까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옥자'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넷플릭스가 5000만 달러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옥자'는 소녀 미자가 4세부터 10년동안 슈퍼돼지 옥자를 키우며 함께 성장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자연의 섭리를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동화적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풀어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옥자' 공개 직후 넷플릭스의 주간 접속자가 2배 가량 급증했다는 통계 자료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옥자'를 필두로 '킹덤' '오징어게임'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잇따라 공개하면서 넷플릭스는 국내외에서 1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자리를 굳혔습니다. 특히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 역시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세웠는데요. 당시 블룸버그통신이 넷플릭스가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으로 9억달러(약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제작비인 2140만 달러(약 253억)의 39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더 이상 ‘속 빈 강정’ 취급받던 넷플릭스가 아닙니다. 넷플릭스는 몇 년 새 국내 OTT 시장에서 1위 사업자로 우뚝 올라섰습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47%입니다.
다만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망 이용대가 지급 문제입니다. 국내 콘텐츠제공사업자(CP)을 비롯해 디즈니, 메타(구 페이스북) 등 해외 CP들은 콘텐츠 전송과정에서 망을 이용한 데 따른 비용을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 내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넷플릭스는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 지급의무를 두고 SK브로드밴드와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자체 CDN인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Open Connect Apliances·OCA)를 설치해 콘텐츠 전송과정에서 ISP의 트래픽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ISP의 입장은 다릅니다. 해외 구간은 몰라도 국내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양에 대한 OCA의 절감 효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SK브로드밴드와의 1심 재판에서 넷플릭스는 패소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나올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한편 넷플릭스가 국내에 출시된 이날은 공교롭게도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한국 리전(복수의 데이터센터를 지칭)을 오픈한 날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는 7년에 걸쳐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데이터센터를 폐쇄하고 콘텐츠전송시스템(CDN)을 제외한 자사의 모든 IT시스템을 AWS에서 운영 중입니다. 두 회사가 같은날 한국에 서비스와 인프라를 출시한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네요. 넷플릭스가 자사가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이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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