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거버넌스, 100년 논의 시작됐다…전문가들 다양한 시각 ‘눈길’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규칙 개정에 따른 향후 인터넷 거버넌스(관리체계) 방향을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3일 크리에이티브커먼즈코리아(CCK)는 한국정보법학회와 함께 서울 당산동 하자센터 창의허브에서 ‘인터넷 통제를 둘러싼 권력 전쟁’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엔 오바마 정부 특보를 지낸 수잔 크로포드 하버드 로스쿨 교수와 전길남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명예교수(일본 게이오 기주쿠대학교 부총장), 박재천 한국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 운영위원장(인하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박윤정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기술경영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날 국내외 전문가들도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의견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토론이 진행됐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를 내면서 거듭 강조한 부분이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방향에 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토론에서 가장 자주 언급한 말이 ‘멀티 스테이크홀더’(다양한 이해관계자)였다.
전길남 교수는 포럼에서 “지금 (인터넷 거버넌스 의사결정에 대해) 멀티 스테이크홀더의 자리가 없다”면서 “앞으로 40년동안 같이 고생해야 한다. 100~150년이 걸린다고 보고 그런 맥락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재천 교수는 “ITU레벨에서 인터넷 거버넌스를 처음 얘기했다고 본다”며 “이제 시작한 단계로 (인터넷에 미칠 영향에 대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ITU 규칙 개정을 보는 상반된 시각=국제연합(UN) 산하 기관인 ITU는 지난 12월 14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폐막된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에서 개정된 규칙을 통과시켰다. 1988년 이후 24년 만에 규칙이 개정됐다.
ITU의 새 규칙에는 193개 회원국 가운데 89개국이 서명했으며 여기에 한국도 포함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새 규칙에 인터넷 규제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여기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55개국은 서명을 거부했다. 이와 관련돼 수잔 크로포드 하버드 로스쿨 교수<사진>는 미국을 대변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밝힌 가운데서도 “미국이 이 회의에서 사인하지 않은 이유는 인터넷을 규제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윤정 교수는 ITU회의에 한국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했다고 밝히고 크로포드 교수와 다른 주장을 펼쳤다.
박 교수는 “두바이 ITU 논의는 미국의 기존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을 수성할 것인가 유엔으로 가져가 이것을 국제화 모델로 만들 것인지가 문제였다. (WCIT-12에서) 선진국의 정치적 접근을 볼 수 있었다”면서 국제정세가 ITU 회의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을 밝혔다.
크로포드 교수는 “(개정된 ITU 규칙은) 인터넷이 전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별로도 나눠질 수 있는 인터넷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와 통신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는데 한번 걸러지면 아무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규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포럼 사회자로 참석한 윤종수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는 토론에 앞서 개정된 ITU 규칙에 스팸과 보안에 관한 규정이 있음을 밝힌 가운데 크로포드 교수는 “한사람이 스팸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예술작품일수도 있다. 보안에 관련된 문제도 콘텐츠 내용과 관련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가 (자국 인터넷 거버넌스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데 다른 정부의 프레임이 들어오는 것이 반가울 수가 없다”며 “한국은 동북아 정세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주변국의 영향력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다.
또 박 교수는 “ICANN(국제도메인관리기구)는 가상세계에 핵파워를 가지고 있는데 그 파워를 한 국가(미국을 지칭)가 독점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덮어두지 말고 공론화해야 한다”며 인터넷 거버넌스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했다.
◆인터넷 거버넌스, 한국도 관심을 가져야…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중요=이날 포럼에서는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 제고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재천 교수는 “두바이 회의가 대단한 것은 인터넷 거버넌스를 공중에 띄웠다는 것”이라며 “그 전엔 인터넷 거버넌스를 사람들이 전혀 몰랐다. 이번에 두바이 회의가 (인터넷 거버넌스가)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인식을 제고시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박 교수는 “ITU 대표단 구성원 30명 중 1명이 한국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에서 파견이 됐다”며 “우리나라 대표단이 실질적으로 인터넷 거버넌스를 얘기할 수 있는 주력멤버가 아니었는데 다음에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지난 ITU 회의를 꼬집기도 했다.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는 “시민과 자율이 중심이 된 인터넷 거버넌스여야 한다”며 “수평적 지배체제가 바람직하고 인터넷통제권이 독점되지 않도록 견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길남 교수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전망에 대해 “인터넷은 에코시스템으로 테크놀로지가 아니다”라며 “역사상 경험이 없는 시스템을 서스테인(유지)해야 한다.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ITU가 (인터넷 거버넌스를) 만져야 하는 조직인가도 수십년 지나면서 결정해야 한다”고 다양한 시각으로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포럼 사회를 맡았던 윤 판사는 “앞으로 실상을 알고 대화를 해나가야 우리 인터넷을 결정지을 수 있는 거버넌스가 될 수 있다”며 “시민 참여 등 스테이크홀더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토론을 마무리지었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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